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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할머니와 삽니다.
가정 환경 조사서를 보면..
" 엄마 아빠가 다 있으나 엄마는 집나가서 소식이 없고
아빠도 집나가서 잘 오질 않습니다. 어쩌다 한번 정도 와서 아이만 보고 갑니다.
할머니가 키우고 있습니다. 할머니도 70이 넘어 아이들 잘 돌봐 주지 못하고 있스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기 때문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염치 없지만 신경 좀 많이 써 주세요"
(.... 태호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신다.. 이건 주인집 아주머니가 쓰신 글이다..)

태호는 그렇게 삽니다.
그래서.. 당연히 준비물을 챙겨오지도 않고
당연히.. ? 공부를 못합니다.
글씨도 못쓰고 밥도 편식이 아주 심합니다.
아이들을 잘 놀리고 잘 떠들고 ... 그러면서 저한테 자주 고자질을 하는...(제가 싫어하는 타입의 아동이죠.. ^^;)

2학기 처음으로 이 아이들을 맡았을 때
거의 준비물을 못 챙겼다며.. 수업 시간에 불쑥 불쑥 문을 열기도 하시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아침에 태호랑 같이 오셔서 신세 타령을 늘어 놓는 할머니 때문에
짜증스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생활이.. 3개월이 지났습니다.

저희 반은 토요일날 간식을 가끔씩 싸 옵니다.
학교에서 밥을 안 먹으면 집에서 챙겨줄 사람도 없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에서 빵이라도 사서 같이 먹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역시 가난한 동네여서 그런지..
저는 한번도 못 얻어 먹었습니다 ^^;
아.. 화려했던 대구의 ㅂㅂ 초등학교가 얼마나 그립던지..
(옛말에.. 음식끝에 맘 상한다고..)

지난주에.. 4교시가 시작될 무렵.. 아이들은 간식을 꺼내고 있는데..
역시나 태호 할머니가 앞문으로 서슴없이 벌컥!!!
옷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슬쩍 보이는 신문지..

교탁으로 오시더니.. 대뜸..
"한번도 선생님 간식을 챙겨 드렸어야지 원~~ 이거 식기 전에 드셔..
시간 맞춘다고 빨리 걸었더니.. 아이고 참.. 힘드네.. 호호"

혹시나 식을까봐.. 호일에 비닐에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슴에 넣고 오신 것은
할머니가 부치신 전이었습니다.
호박전, 그리고 해물파전... 각각 2장씩
괜히.. 찡.. 하고 머슥하고..
애들 앞에서 전을 먹을 수도 없고
저도 행여나 식을까.. 신문지에 싸인채로 그대로 들고 집으로 왔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역시나.. 또 앞문을 벌컥 여시더니..
이번에는 야쿠르트, 빨대1, 요플레, 스푼1, 천하장사 소세지 하나, 귤 하나..
이렇게 비닐에 넣어서 불쑥 놓으시고는
"태호야.. 학교 마치면 곧장 와.. 알았제?.." 하시며 나가셨습니다.

지금 저는 천하장사 소세지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척 힘이 납니다. ..*^^*
어려운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 가운데서 따뜻함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아이들에게 따뜻함이 되도록..
성질 좀 죽이며 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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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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