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수업공개가 지나갔다.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럽고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고 3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현실을 잘 아시는지 적당히 5분정도 있다가 대부분 나가시거나, 국어나 국사 혹은 윤리 같은 과목으로 --아마 알아들을 수 있거나 재미있을 거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몰려가는 바람에 수학, 물리, 영어 같은 과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4교시에 수업공개를 하는 바람에 단 한분의 어머니도 들어오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2교시와 3교시에 집중적으로 참관하느라 진이 빠진 어머니들이 대거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 같다. 어머니들을 빨리 피곤하게 하셔서 집으로 돌아가게끔 하신 것 같다. 어쨌든 싱겁게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 수업을 하다가 여학생반에서 한 여학생이 갑자기 심하게 불평을 쏟아놓았다. 공부잘하는 애들을 위주로 수업을 한다고,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도 모르고 그냥 넘어간다고. 학원쌤들이 그러는데  EBS교재를 풀어야지 지금 이 문제집은 어렵기만 하고 도움이 안된다고 했다. 내가 만약 신참교사였다면 충격을 받았겠지만 별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걸 이제 알았냐,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니가 그렇게 이야기해도 달라질 건 없다"라고

3반 우리반 일명 쓰레기반에서 수업을 했다. 반 이상이 엎어져 잤다. 문제집에 얽매여 시험범위맞추기 위해 진도나가려 하다보니 혼자 떠들 수 밖에 없었다.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이들 속에 배움이 일어나야 보람이 있는데, 이건 뭐 돈벌이를 위해 시간떼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어쩌겠나 수업은 많고 피곤하고 지치고 애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바쁜데. 수퍼맨이 아닌 이상 힘들지 않겠는가? 보충수업비하고 석식비 안낸 놈들 불러서 다독여야 하고 지각 야자도망간놈들도 야단쳐야 한다. 바쁘고 힘들어 죽겠다. 수업을 하는 게 중요하지 매번 연구수업하듯이 하다간 비명횡사한다.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담배피는 녀석을 잡기 위해 화장실을 급습해서 몇놈을 잡았다. 전부 우리반이다. 잡는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 있는가? 때린다고 벌준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히 청소시키고 고3인데 공부해라고 하면서 풀어주었다. 아마 녀석은 또 피울 것이다.

어제 야자시간에 야자하는 걸 쭉 둘러보았다.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게 나의 요즘 관심사이다. 특히 어떻게 공부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는데 아이들이 인터넷강의를 듣기위해 조그마한 전자기기 화면을 보면서 이어폰을 꼽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병원환자들 링겔주사맞는 모습과 흡사했다.
할머니가 노인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데 찾아뵈었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가 다빠지고 피골이 상접해서 거동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시는데 식물인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요거트를 떠먹이면서 이상하게도 우리반 애들 생각이 났다. 살아있으나 정신은 죽은 상태....

나도 그렇다. 교사..

팍팍한 현실에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한 답시고 했는데 중간에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바쁘다. 열심히 수업해서 돈이나 열심히 벌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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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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