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쪽지편지를 남겨요

든든한 후원자
두 딸 다솜이와 다빈이가 잠든 밤,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에 들어섰다. 오늘은 다른 교회에서 집회가 있어서 마치고 돌아오는 밤 11시경이다. 이런 날은 영적으로는 투명하지만, 몸은 피곤하기 마련이다. 집에 들어서며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별 일 없었어? 아이들은?...... ”
“응!!! 잠 들었어. 집회는 잘 마치구?”
좋은 동역자인 아내는 아이들과 나 사이의 중간 역할을 잘하고 있다. 물론 아빠의 위치에서 나만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남편에게 있어 아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빠가 밖에 나가서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불어넣어주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자녀들에게 갖게 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평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또한 이러한 가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밖에 나가 일하는 남편, 아빠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서다.

불만은 없나요
나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거의 오후 7시 안팎에 끝난다. 퇴근은 5시부터 가능하지만 기도회와 예배 등이 거의 매일 있기 때문이고, 강의나 집회가 있는 오늘 같은 날은 더 늦어지게 된다. 이런 나의 분주한 생활을 아는 분들이 가끔 질문한다. 가족들은 늦게 들어오는 나에 대해 불만이 없냐고 하며 말이다. 그리고 나도 가정에 소홀해지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밖의 일을 핑계로 가정을 생각지 않고 있는지 반문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이들과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지려 하고 있다. 식사를 밖에서 하는 것과, 저녁 8시, 9시경에 가족들이 모두 동네 놀이터에 가서 배드민턴도 치며, 줄넘기도 하는 것 등의 시간 말이다. 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한 시간 남짓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러나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우리 가족만의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그런데 이 날 밤은 아내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늦게 들어와서 화가 나 있다든가 퉁명스럽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화사한 미소의 얼굴로 나에게 물어왔다.
“여보, 피곤하지? 오늘 엄마들 모임이 있었거든. 그런데 아주 좋은 아이디어 하나를 알아가지고 왔어.”
나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디어라니? 무슨 아이디어 말야?”
“여보, 오늘 다솜이하고 다빈이가 무척 많이 당신을 기다리다 잤거든. 모두 좋은 일이 있어서 말야. 다솜이는 시험을 100점 받았고, 다빈이는 유치원에서 수영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아빠에게 말하고 싶어서 말야. 그래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잠이 들었는데......”
아내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오늘 한 엄마가 말하는데 자기 남편은 늦게 들어오는 날은 다음 날 쪽지 편지를 써놓고 출근한다는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일어나서 그것을 읽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데... 그래서그런데 당신 여러모로 잘하지만 우리 다솜이, 다빈이에게도 가끔 쪽지 편지를 쓰면 어떨까? 오늘처럼 늦게 들어오면 당신 내일 아침 아이들 눈 뜨기 전에 6시면 출근하니까... 어때? 여보.”
“그래? 그러지 뭐!”

천사들의 합창
다음 날 아침, 나는 책상 위에 다솜이와 다빈이에게 쪽지를 남겼다.
“다솜아, 축하해. 100점을 받은 것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렴...... 아빠도 기뻐!”
“다빈아! 벌써 수영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엄마에게 들었어. 열심히 해서 튼튼하게 자라고 멋지게 수영하렴. 아빠가 꼭 한 번 보러 갈게.”
어린 두 딸 아이가 잠이 깬 후 이것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하며, 쪽지 편지를 두 아이의 머리맡에 두고 출근을 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모저모로 십수년간을 같이 살면서 나는, 세 여자와 누리는 행복감에 젖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잠자는 아내를 보는 순간 갑자기 왠지 모를 ‘짜안’하는 마음이 일었다.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았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쪽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 덕분에 소홀한 아빠라는 누명을 벗게 된 것 같아. 아이들이 눈을 뜨면 정말 기뻐할 것 같은데. 고마워. 나, 출근해...”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붕 떠 있는 듯 기뻤다. 그리고 퇴근, 세 여자가 문앞에까지 나와 여느 때보다도 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세 여자의 왁자지껄이 천사들의 합창으로 들려왔다.
-------------------------------------------------------------------
기쁨은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아내에게, 내 자녀에게 쪽지 편지를 씁시다.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밝은 미소가 넘쳐납니다. 활력 있는 가정이 될 겁니다.
조회 수 :
728
등록일 :
2004.07.06
10:15:48 (211.112.148.253)
엮인글 :
http://www.tcf.or.kr/xe/diary4/109542/8ce/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09542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sort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65 선생님 기분대로... [2] 744     2003-12-22
오늘 아이들에게 1년을 돌아보며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야말로 교사평가죠!... 수업면에서뿐만 아니라 학급 운영면에서 벌을 주는 면에서 여러가지 저에게 도움이 되도록 써달라고 했습니다. 역시 하이들은 날카롭더라구요. 5학년 정...  
64 내가 매일 기쁘게(1/6) 748     2004-01-05
기독교 TV '내가 매일 기쁘게'(김학중 목사, 정애리 권사 진행)에 영훈고 기독학생 2명(차인화-덕성여대 재학중, 이나은-경희대 합격)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토크쇼 형태로 진행되었고, 자료 영상으로 학교의 수업, 학생들과의 생활, 기독활동, 아이들의 인터...  
63 학부형으로 만나는 선생님 748     2004-03-29
1. 아픈 아이를 결석시키며 "아이가 감기가 심해서 오늘 학교에 안갔을 거예요" 한아이의 선생님 "알았어요. 그런데 이것만은 아셔야해요. 안오면 결석처리가 되구요. 학교에 들르면 병결로 처리돼요. 그러니까 어차피 병원 갈거면 할머니와 함께 학교에 들르...  
62 사랑은 오래참고.. [1] 752     2005-03-21
점심시간입니다. 체육을 내리 3시간하고 났더니 밥맛이 아주좋네요. 오늘엔 아침도 걸렀거든요. 작년8월에 교대를 졸업하고 춘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6학년 체육과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아직 발령이 안나는 바람에 다시한번 예전의 그 학교에서 6학년 ...  
61 250통의 엽서 [3] 755     2003-11-11
팔 떨어져 죽는 줄 알았어요 -250통의 엽서 그러면 저는 뭐하죠? 대입 수능일이 되기 한 달 전부터 고3 수업 교재의 진도는 거의 다 끝났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정리할 시간을 요청했다. "여러분! 그것도 좋긴 한데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과목 정리할 ...  
60 느껴보지 못한 사랑 755     2003-12-08
느껴보지 못한 사랑 - 영희 이야기 복학생 언니 영희는 복학생이다. 그래서 2학년 동급생들이 언니라고 부른다. 덩치도 크고 마음도 넓게 생겼지만 그다지 학교 생활에 흥이를 갖는다든가, 또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영희에게 호감을 갖게 된 ...  
59 우리반 단합회 [1] file 757     2005-03-21
 
58 급훈 정하기 758     2003-03-19
급훈공모-3000원 상당의 선물이 있음. 칠판에 적어니 "선생님, 급훈이 뭐예요?" 묻는 학생이 정말 있었다. 초등학교 6년동안을 지나왔는데 정말 모를까 싶었지만 우리반 아이들이 한해동안 지켜나가야 할 목표나 규칙이라고 말해주었다. 한사람이 하나씩 적어...  
57 무너진 마음 [2] 759     2003-09-24
"더 과정을 자세히 써와라.그러면 A줄게" 수행평가실시중. 교과서 평소에 설명듣고 풀이과정을 책에 쓰게 하는데 과정이 빠진것이 있어서 문제를 책에 풀고 과정을 쓰면 그 과정을 보겠다고 했는데... 한번더 기회를 주겠다는데 어느 여자아이의 반응 "에이 시...  
56 "아이들을 우리 자식처럼" 761     2003-10-13
*토요일밤 저희학교 선생님들 카페에서 선생님들과 주고 받은 내용. 그 게시판에서 복사해왔습니다. 고민이 많은 제게 넌크리스챤인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이 맘을 다잡게 합니다. 오히려 믿는다고 하면서 부족한 제게 아이들을 아끼는 주변선생님들이 힘이 되...  
55 학교에 오는 이유? [3] 764     2004-12-11
병가 끝내고 학교 나온지 3주가 되었습니다. 학교 나오는 것이 겁이 났었습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니까요. 밤마다 수술한 부위가 가려워서 잠을 설치고 걸을때마다 다 아문 상처인데도 상처에 옷이 스치면 따갑고 아프기도 합니다. 또 온몸에 왜이리 ...  
54 아동성폭행을... 766     2004-02-23
아동 학대를 당했어요 - 영훈고 기독학생회(YSCA) 재학생 동문 연합수련회 첫 연합 수련회 영훈고는 기독교 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학생회, 기독학부모회, 기독교사 신우회, 그리고 기독동문회가 있다. 이중 가장 나중에 정식 모임을 허락해주신 것이 ...  
53 2학기를 시작하며... 769     2005-09-03
개학하여 처음엔 암담..하지만 며칠 가르치니 또다시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되어 신나게 아이들과 어울어집니다. 샘들도 그렇죠? 추석연휴에 축제에 또 우리학교만의 다양한 행사들, 휴일들. 어느 선생님은 그래서 1학기때 미리 2학기 진도를 나가기도... 진도가...  
52 아이들이 힘나게 하네요. [1] 770     2004-04-14
비담임이라 그런지 요즘은 아이들이 마냥 예쁘기만 하네요. 1학년 수학시간. 색종이로 아주 작은 정사각형을 오려붙이며 덧셈,뺄셈을 배우는데 아이들의 질문. "선생님! 색종이 남으면 어떡해요?" 처음엔 "내가 너네 남은 색종이까지 걱정해야되냐?" 그러다가 ...  
51 우리 부모님은 왜 결혼을 했을까요? 773     2003-12-03
오랫만에 교단일기를 적는다. 예전에 2001년도에 6개월동안 교단일기를 적었는데... 날마다 자기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살고는 싶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왜 이리 무거울까? ^^; 이번 주에는 나 스스로 으로 정했다. 우리 반 아이...  
50 생활환경조사 - 누구에게나 아픔의 흔적은 있다. [2] file 785     2004-03-05
 
49 바늘 도둑 787     2004-06-11
어제 모처럼 연구수업을 했다. 경력이 이제 곧 10년을 바라보는데도 선생님들과 장학사가 뒤에 있으니 긴장이 되었더랬다. 한참 수업을 진행하다가 후반부에 시간계산을 잘못해서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끝낸 실수를 범했지만 그런대로 잘 끝난것 같다. 지난 겨...  
48 내서중학교 첫날 풍경 [1] 792     2005-03-04
2005년 3월 2일 수 시골 작은학교로 첫 출근. 입학식이 10시30분인데 아이들은 벌써 와있네. 남학생 박정훈이는 안왔고 김미영,김정빈,신현정,추수빈이가 와서 들락날락.. 교실에 들어갔더니 난로 주위로 책상이 배열되어 앉아 있네. 발자국노트를 나누어주고 ...  
47 변해가는..아이들 [1] 793     2004-12-09
6학년 체육과 음악 전담을 맡고있는 시간강사입니다... 졸업하고 처음하는 시간강사인데다가 6학년을 맡아서 처음에는 부담이 많이 되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만도 않더라구요.. 덩치는 제일 크지만 제 눈에는 1학년 꼬맹이들보다 6학년이 훨씬더.. 예쁘게...  
46 학부모님께 보낸 3월 편지 file 795     200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