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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독자칼럼입니다. 대기업 CEO를 지낸 분이 보여준,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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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을 일러 ‘이념의 서’(理念의 書)라고 합니다. 또 예산의 기본 전제는 그것이 돈, 시간 또는 그 밖의 어느 것이 되었든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12월2일 도청 직원 대상 월례조회에서 “학교는 밥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다. 학교가 무료급식소는 아니다”라면서 마치 서로 경쟁하다 하나는 죽고 하나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한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중학교 1·2학년을 다닌 저는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키는 것이 싫어서(부끄러워서) 학교 급식 혜택을 받지 않았습니다. 도시락을 못 싸왔다고 말만 하면 우유 한 병과 빵 2개를 먹을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덕에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고향집으로 낙향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 때문에 ‘자기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혜택을 주는 방식의 복지제도보다 어린이면 어린이, 초등학교 학생이면 학생 그 자체 자격으로 혜택을 받도록 하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경험만큼 값진 교훈이 있을까요? 그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 김 지사와 김상곤 교육감이 무료급식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문수 지사의 사적 경험을 이해하려고 김 지사의 과거기록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래도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 의문에 스스로 답을 구해봅니다. 김문수 지사의 무료급식에 대한 태도는 지난날 어렵던 시절을 그냥 잊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어려운 시절을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김 지사님! 지금 싸우고 계신 무료급식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소수라고 해도 가난을 입증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해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 제가 아는 김 지사라면 분명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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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 학비면제가 필요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몸이 안좋으셨던 어머니, 막노동을 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땅히 앞으로 나가서 학비면제 신청서류를 받아야 했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책상만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큰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시며 "형편 제일 어려운 놈이 안 나오고 뭐해!"하시던 목소리는 22년이 지난 지금도 제 머리에 생생합니다. 그 목소리 덕에 학비면제를 받아서 고맙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다수의 교육 정책은 불친절하고 매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책은 학생의 "배움"에는 관심이 없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눈감은채, 마치 프로야구팀과 중학교 야구팀의 시합을 붙여놓고, 결과로만 말하겠다고 하는 무서운 대학입학제도를 "객관적이다"라는 말 한 마디로, "타당성"과 헌법에 보장된 "교육기회의 평등"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독교사이며,  담임된 나 조차 마감시일로 압박해오는 행정업무에 쫓겨서 내 반 아이의 문제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늘 반성합니다.

신문 한켠의 독자칼럼을 놓고 월요일 아침부터 무거워졌네요.
경기도의 무료급식문제가 선하게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불평등한 교실에 서 있는 우리 선생님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친절해지고, 우리가 더 아이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학력이 뒤쳐지기 쉬운 형편의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 자신의 가난을 입증해야만 면제받는 제도보다 한 발 위에 서서, 가정방문이든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든 필요한 관심을 기울여서, 아무도 방치되지 않는 교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빌어요.
안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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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9.12.07
09:32:53 (*.106.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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