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젠가 썼던 글입니다. 여러가지 운동 때문에 힘겨워하는 우리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어느 날 책방에 갔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도종환씨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부드러운 직선".

거의 한시간 정도 책방에 서서 그의 시집을 다 읽었습니다.
비록 그의 운동이 기독교사운동은 아니어도,
한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몸부림치며 싸워온 한 운동가의 치열한 삶이
온 몸을 전율케 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젠 더이상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오히려 우리가 힘겹게 일하는 이 일엔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기다리는 지금,
80년대 어려운 교육계 속에서
온몸을 던져 시대를 품으려 했던 분들을 향한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고마운 마음.

그리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운동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감옥갈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한 지금,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우리의 하는 이 운동이
불의한 제도와 정권과 상대하는 힘겨운 싸움은 아니지만,
생색내는 기회주의 운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치도록 일한 주님처럼,
밤을 새도록 기도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고민하며 기도하신
주님처럼,
전도 여행 때 말라리아로 힘겨운 육체를 끌고
사우르스 산을 오른 바울처럼
내 몸 부숴져라 일하고 그래서 쇠악해져야겠다고.

그래서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교사들이 이 시대 속에서 감당해야할 십자가는
감옥이 아니라, 육체의 연약함일지 모른다고.

그래서 옛날 대학 때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그 선배의 이야기처럼,
죽을 때는 내 몸 속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이 육신을
아이들과 세상에 주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다 생각합니다.





-도종환

아무리 몸부림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정을 넘긴 길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너는 울었지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길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따위 상투적인 희망은
가짜라고 절망의 바닥 밑엔 더 깊은 바닥으로 가는 통로 밖에
없다고 너는 고개를 가로저었지.

무거워 더이상 무거워 지탱할 수 없는 한 시대의
깃발과 그 깃발 아래 던졌던 청춘 때문에
너는 독하디 독한 말들로 내 등을 찌르고 있었지

내 놓으라고 길을 내 놓으라고
앞으로 나아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지금 나는 쫓기고 있다고 악을 썼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라는
나의 간절한 언표들을 갈기갈기 찢어 거리에 팽개쳤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던지는 모든 발자국이
사실은 길찾기 그것인데
네가 나에게 던지는 모든 반어들도
실은 네가 아직 희망을 다 꺾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너와 우리 모두의 길찾기인데
돌아오는 길 네가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던
안타까운 나의 나머지 희망을 주섬주섬 챙겨 돌아오며
나도 내 그림자가 끌고 오는
풀죽은 깃발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네 말대로 한 시대가 네 어깨에 얹었던 그 무거움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이 혼돈 속에서 무엇을 할수 있느냐고
너는 내 턱밑까지 다가와 나를 다그쳤지만
그래 정말 몇편의 시 따위로
혁명도 사냥도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한올의 실이 피륙이 되고
한톨의 메마른 씨앗이 들판을 덮던 날의 확실성마저
다 던져 버릴 수 없어 나도 울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네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네 말대로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 만은 없다
나는 가겠다
단 한발짝이라고 반발짝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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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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