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을 배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내 뜻과는 달리 이제는 기어이 배워야 할 것만 같다...지난 일요일 어머니를 모시고 벌말(평촌)에 있는 숙부댁에 다녀온 것이 이런 내 생각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팔순에 가까우신 어머니와 숙부댁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는데 중간에 한 번 갈아타는 일까지 있었다. 어머니는 무릎과 허리에 관절염이 심하셔서 걷는 것이 상당히 불편한 상태이시다.

우리나라 전철은 요즘 생긴 것은 승강장에서 바로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1-4호선까지는 그런 것이 없다. 어머니는 특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런 전철을 한번에 간 것도 아니고 갈아 타기까지 하면서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시며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업고 갈 수도 없고 옆에서 바라보기가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전철에서는 노약자석에 가니까 노인네에게 즉시 자리를 양보해줘서 서서가는 민망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행인들은 앞에서 자기네와 보조를 못 맞추고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네의 걸음이 자기들 가는데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한 어머니를 뵈오면서 그 동안 내가 철칙 같이 지켜오던 내 마음이 더 견디지 못하고 '차를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도 추운 겨울밤에 어디 갔다가 택시를 타려고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타나 했더니 사람 많다고 거절당했을 때에조차도 '아무래도 차를 가져야겠다'는 아내의 말을 간단히 물리치고 안고 다니던 내가 아닌가?

그 뒤에도 식구들이 차를 갖자는 말을 아무리 해도 마이동풍이던 내가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오늘 다시 뵈오면서는 '이제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신다구...'하는 생각과 함께 그 동안만이라도 어디 가실 때에 내가 편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슬하에 사형제를 두셨다...그러나 어느 형제도 부모님과 같이 사는 형제가 없고 교회도 제각기 다른 교회에 나가고 있다. 다만 내가 부모님과 같은 교회에 나가고 있을 뿐이다. 아들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차가 그렇게나 많은 시대에 살면서도 사형제 중 큰 아들인 나만 빼고는 다 차가 있어도 부모님을 교회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리는 아들조차 변변히 없는 것을...

그래서 숙부댁에서 돌아올 때는 한참 망설이다가 어머니께 기어이 말씀을 드리고 말았다.

'어머니, 이제는 우리집 곁으로 와서 사세요. 우리아파트 곁으로 이사오시면 제가 차를 사서 운전 배워가지고 어머니 가고 싶으신 곳 여기저기 모시고 다닐께요'

부모님은 지금 개봉동에서 사시고 나는 의정부에서 살고 있다. 개봉동과 의정부는 수도권의 서에서 동이라고 할만큼 멀다.

그 동안은 맞벌이 부부인 셋째가 낳은 손녀딸을 보살펴 주시느라고 셋째네 집 근처인 개봉동에서 살고 계셨던 것인데 이제는 할머니가 보살펴 주지 않아도 될만큼 손녀딸이 컸고 셋째는 새로이 분양 받은 새 아파트로 이사가서 살고 있다. 그래서 셋째네 집과 부모님 댁은 좀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같은 동네이긴하나 전보다는 상당히 멀어서 왕래하려면 일부러 작심해야 가능한 정도의 거리다. 그러니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굳이 개봉동에서 사실 필요가 없는 처지이시다.

물론 사형제 중에서 장남인 내가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아야 하겠지만 그 것은 당위론적인 생각이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부모님과 한 집에 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 옆에서 사시게 하면서 우리가 보살펴 드릴 수 있는 것을 보살펴 드리려는 것이다.

전에 혼인해서 처음 6년 동안은 부모님과 산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과 아내는 너무나 맞지 않았다.

아내네 친정은 이북 평북 선천 출신으로 이북에서부터 삼대에 걸친 기독교 집안이었으며 일찌기 서구화된데 반하여 우리 집은 전통적인 유교 가정이었으니 도대체 맞을 리가 없다. 그런 판국에서 혼인 6년만에 어렵게 분가해 어언 16년을 따로이 살아왔다.

아들이 사형제나 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아들이 없으니 아들이 많은들 뭐하는가? 장남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데 어느 며느리가 부모님과 살겠다는 자기 남편의 말을 따르겠는가? 기독인 며느리들도 '둘이 한 몸이 되어 부모를 떠나...'는 외우고 살아도 '고르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 나이에 내가 운전을 배워서 어느 세월에 능숙하게 운전을 할 것이며 길눈도 어두운 내가 어떻게 길을 익혀서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다닐 수 있으려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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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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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0 영송여고 친구초청잔치를 돌아보며 736     2002-09-17
다음 글은 2학년 리더인 다히가 쓴 글입니다. 9월 7일은 시심에서 주최(?)하는 "친구초청잔치"행사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태현교회였구요, 시간은 2시에 시작해서 6시쯤에 모든 행사가 끝이 났었습니다. 한사람당 1명정도 친구데리고 와서 맛있는 점심도 대접...  
2419 그렇게 여기는 것과.. 그러한 것... [9] 438     2002-09-17
이곳 천일 초등학교에 온지 어제로 2주가 지나고 오늘 ..3주에 접어듭니다. 어떻게 살았냐구요?.. 흐흐흐.. 밑바닥.. 다 보며.. 내 속에 숨겨진 여전한 분노와 잔인성을 보며.. 와르르 무너지는 자아상에 어찌할 줄 몰라하며.. T.T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