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순식아

가정방문 다녀오신 분은 글을 남겨주세요. 글을 남겨주실 때는 한 아이의 사례를 줄 이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량은 A4용지 2매 정도면 됩니다. 앞으로 이 내용을 책으로 펴볼까 생각합니다. 공모전도 있으니 꼭 부탁합니다. 여기 작년에 제가 경험했던 아이의 사례를 정리해봤습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아깝다, 순식아

순식이는 우리 학교 중창단 대표이다. 그래서 월요일에 가끔씩 있는 운동장 조회 때 애국가나 교가가 연주되면 단상에 올라가서 지휘를 한다. 담임교사인 나는 그런 그 아이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그것은 그 아이가 그렇게 복장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옷차림도 정갈하지 않을 뿐 아니라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 여러 번 용의복장 정돈을 이야기했지만, 말을 듣지 않고 반발하던 그였다.

그러다 어느 날은 조회 끝나고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불려가 머리 문제 때문에 핀잔을 듣더니 그 다음날로 고치고 왔다. 담임 말보다 학생부장 교사 말을 더 듣는 아이가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순식이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학급 내 석차는 낮은 축은 아니지만, 1학년 때 성적이 전교 100 등 안에 드는 아이가 1명 밖에 없는 학급에서 사실 학급 석차는 큰 의미가 없다.

2001년 4월부터 시작한 가정방문. 나는 한 달에 걸쳐서 대부분의 아이들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제 한집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그것은 순식이 집이었다. 순식이 집은 학교에서 멀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묶어서 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엄마가 일을 나가시기 때문에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5월 다사로운 봄날 토요일, 순식이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두 달이 되어 가면서도 순식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느낌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모범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반항적인 느낌. 학교를 나서면서 나는 길을 가며 순식이가 쓴 자기 소개서를 읽어보았다. 그런데 순식이의 자기 소개서를 읽으며 한가지 의외로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주 정갈한 필체 때문이었다. 내가 익히 겪어왔던 남학생들의 필체와 순식이의 필체는 너무도 달랐다.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고 가지런히 쓴 글은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야, 너 필체 참 가지런하구나."

푸석푸석한 외양에 조금은 반항적인 아이에게서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던 의외의 일이었다.


아이가 살고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제법 시간이 걸렸다. 5월의 푸르름을 느낄 수 없이 순식이 집으로 가는 길은 사람과 건물로 어수선한 거리였다. 길을 건너는데 아이는 신호등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건넜다.

"야, 너 그러면 어떻게 하니?"

"선생님, 여기서는 다 이렇게 해요. ... 저 선생님, 중학교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망가졌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저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어요."

"뭐라고?"

"왜?"

"길 가다가 아파트 현관 앞에 세워놓은 자건거를 훔쳐 달아나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들켜서요."

아이의 입에서 내놓는 한마디 한마디가 갈수록 태산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아이의 집. 2층 다세대 빌라 전셋집이었다. 어머니는 토요일 장사를 나가시지 않고 계시다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삶의 그늘이 전혀 느껴질 수 없는 단아한 어머니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잠깐 어머니와의 대화는 나중으로 하고, 순식이의 방에 들어갔다.

"지하 단칸방 월세 방에서 살다가 최근 빚을 겨우 갚고 어머니가 여기로 이사왔어요."

아이는 새로운 집으로 온 것에 매우 다행스러워했다. 나는 아이의 책꽂이를 훑어보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살펴보았다. 책꽂이는 책상 아래에도 있었다.

"여기는 어떤 책들이니?"
"지금은 쓰지 않는 책들과 옛날 자료들이에요."

순식이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그중 눈에 띄는 A4파일 집을 꺼냈다. 그리고 그 파일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순식이의 이름이 적힌 초등학교 때의 각종 상장이 가득했다. 수학경시대회 수상, 과학경시대회, 글짓기 대회 우승, 미술경시대회 우승, 제기차기 대회 수상, 발명왕, 효행상... A4 파일 약 60페이지가 거의 초등학교 때 상장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거의 한 달에 한번씩 수상을 한 셈이었다.

그것은 아이의 지금 모습에서 도무지 연상될 수 없는 과거였다.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하니 파일집을 응시하며 말했다.

"순식아. 어떻게 초등학교 때 이렇게 상을 많이 받았구나. 놀랍다."

내 말에 순식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때는 참 공부하는 재미가 무엇인 줄 알았어요. 공부하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학교 생활하는 것도 즐거웠고,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참 귀여움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되었니?"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혼을 했어요.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아서 공부하는데 손을 놓았어요. 지금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옛날 그때의 기분을 되돌이키기가 어려워요."

아! 그랬었구나. 결국 그때 이후로 아이가 이렇게 망가졌구나. 이제 눈빛에 총기는 많이 사라지고, 초등학교 때의 그 빛나던 모습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게 된 아이. 깨진 가정의 문제로 인생을 자포자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총망 받는 고2 우등생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아이의 인생이 너무도 불쌍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깝다. 순식아"

그리고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인생은 왜 이다지도 불공평할까? 내가 이 아이를 진작 알았더라면, 그 힘든 인생의 고비 때 내가 이 아이를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내 글썽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순식이와 조금 후에 나와서 나는 작은 거실 겸 주방 식탁에 어머니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의 상념 때문에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았던 기억. 자식의 망가져 버린 모습에 비통한 감정이야 어머니 이상하겠는가 싶은 마음에 내 눈물이 가볍게 느껴졌다.

모자와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누고 일어서려다 문득 내 마음 속에서 이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났다. 식탁에 눈을 감고 나는 두 모자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늘 순식이 집에 왔습니다. 이곳에 와서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순식이가 지금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데 사실 초등학교 때 그 빛나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안타까왔습니다. 하나님, 이 가정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홀로 남겨져 자식을 위해 고생하고 계신 순식이 어머니를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순식이가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지만, 언젠가 순식이가 놀랍게 변화되어 어머니의 위로요 영광이요 기쁨이 될 날이 올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함께 간절히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다. 신앙이 없는 순식이 어머니였지만, 내 기도할 때 많이 우셨던가 보다. 눈물이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

세상에는 이다지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 해체되고 망가져 가는 가정,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우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상처 입은 가정과 아이들을 위로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면 내 몸이 부숴지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해 본다.
조회 수 :
598
등록일 :
2002.04.04
16:20:16 (*.232.15.72)
엮인글 :
http://www.tcf.or.kr/xe/freeboard/100985/538/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tcf.or.kr/xe/10098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678 Re..선하언니! 323     2002-04-17
지인이에요~ ^^ 언니 결혼식때 못가봐서 미안하고 또 섭섭하고 그러네요.. 그 때 제가 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어서리.. 언니 글 읽어보니깐 1학년~ 아~ 공포의 1학년! 전 5학년이에요. 갑자기 울 반 녀석들이 넘 고맙게 느껴지네여. 이만큼 커 주어서~ 울반도 장...  
677 하진이와 만원 [3] 364     2002-04-17
며칠전 부산에 사는 남편 친구가 춘천에 왔었습니다. 오랜만에 저희집을 어떤 일로 들렀는데 하진이와 주윤이가 토요일이라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집에서 둘이 놀고 있었지요. 그 아저씨는 만원짜리 한장을 하진이에게 주면서 "동생하고 똑같이 나눠 가져라"라...  
676 실행위원회 약도와 연합 휴직교사 후원금 입금 file 433     2002-04-16
 
675 울산지방 tcf? 입니다.. [6] 475     2002-04-16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교대 ivf를 졸업하고, 이제 2년차로 울산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김은영입니다. 먼저 울산지방 tcf?라는 말에 놀라셨죠? 네^^ 울산에는 tcf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학교 선배이신 김정태 선배님과 부산지방 tcf대표님을 만...  
67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4). 597     2002-04-15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4) 최문식 2001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우상으로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닌 낚시입니다. 이것을 한번 가면 밤새우는 것은 기본이고 며칠이라도 하니 말입니...  
673 그럴수록 더욱 씩씩하게 ^^ [2] 388     2002-04-15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어요. 죄송하고 감사하고 내가 얼마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지.. 얼마나 공감이 필요한 사람인지 이번에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오늘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관련한 책을 좀 사러 갈 생각입니다 1학년 아이들 .. 저학년 아이들의 신체적...  
672 또 다른 시작 390     2002-04-12
학기초부터 시도하려 했던 아침 활동을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제 아이들에게 아침활동에 대한 공고를 했는데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오늘은 '미디어 속으로'를 하는 날. 오늘은 내가 TV에서 본 멋진 장면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671 정말 힘들다. [4] 416     2002-04-12
1학년이 힘들다. 3교시를 하고 나면 머리가 핑~~돈다. 1학년을 맡고 난 후 근막염에 걸렸다. (물론 계속적인 과부화로 인했겠지만 1학년을 맡은 후로 심해졌다.) 어제는 눈물이 피잉~~돌았다. 참느라 혼났다. 원덕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아이 아니다. 내...  
670 Re..많이 힘들지.... [1] 340     2002-04-13
어린아이들에겐 첫째도 인내요,둘째도 인내다. 처음 1학년 맡아서도 그렇지만...한반에 40명의(특히 저학년) 아이들을 감당하기엔 정말 역부족이다. 1학년 선생님들과 가끔씩 대화를 나누는데 (작년엔 정말 , 힘들정도로 별난아이들이 워낙 많았는데...) 유별...  
669 Re.. 선하야... [1] 438     2002-04-12
작년의 나를 생각하게 하는 요즘 너의 글들... 네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것 같다 전화를 걸어 너와 이야기하고, 너를 위로해주고 싶지만 신혼의 윤선하 - 비록 주말부부이지만 - 지금쯤 뭘하고 있을지 혹시라도 남편과 깨쏟아지게 전화통화라도...  
668 가정방문 네번째날! [1] 407     2002-04-12
 
667 기도해야 하는 이유. 635     2002-04-10
기도해야 하는 이유 최문식 참으로 우리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제쳐 놓고 일 중심으로 향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훈련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고 봉사하고 교제하야 하는 일은 너무나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을 ...  
666 2002 기독교사대회 등록이 시작되었습니다. [1] 334     2002-04-10
2002 기독교사대회 등록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기 위해 원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등록은 '좋은교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TCF home에 보시면 좋은교사 링크 있지요? 꾹 눌러서 한 번 가 보...  
665 우리반 아이들이 매일 부르는 찬양!!! [1] 582     2002-04-09
3월 세째주 토요일 첫 생일 잔치 때 가르쳐 축복송으로 부른 곡은 입니다. 교회에 다녀서 아는 아이들이 있어서인지 곧잘 따라 부르더군요. 두 손을 친구를 향해 뻗는 것은 조금 어색해 했지만... 며칠 전부터인가 점심시간에 제가 아이들이 듣기 좋게 편집한 ...  
664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고 겸손) [1] 443     2002-04-09
소리바다에서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의 노래를 다운받았습니다. ^^ 듣고 있자니, 수련회에서 만났던 선생님들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눈에 눈물을 가득 고인채로, 축복해 주던 노래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너는 그리스...  
663 사립학교법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 [1] 474     2002-04-07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 교사 대회 4.7.14:00 종묘 공원에서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 교사 대회가 열렸습니다. 좋던 날씨가 이상하게도 전교조 집회를 한다고 하면 이렇게 흐리고 이슬비가 오는 날씨로 바뀌는 이유가 뭘까요? 작년에도 멀쩡하던 날씨가 우리 전교...  
662 온달 동굴과 문경 새재 831     2002-04-06
오늘은 식목일. 교회 청년회에서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처음엔 경주나 진해의 벚꽃을 보러 가려고 했지만 차도 많이 막히고 복잡할 것 같아서. 차라리 조용한 북쪽을 택하기로 했다. 목표지는 단양 팔경.예전 정철이 지은 단양팔경에 대한 내용들이 생각이 났...  
661 전주교대 "좋은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3] 970     2002-04-05
기쁨으로 학과별 찬양축제를 마쳤어요!!! 전주교육대학교 "좋은교사를 꿈꾸는 사람들" 이 주최한 "교사 영성 회복을 위한 학과별 찬양축제"가 교대협출범식과 연휴등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교수님, 목사님등 총 147명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하여 찬양을 통하여 ...  
» 아깝다 순식아 송인수 598     2002-04-04
아깝다 순식아 가정방문 다녀오신 분은 글을 남겨주세요. 글을 남겨주실 때는 한 아이의 사례를 줄 이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량은 A4용지 2매 정도면 됩니다. 앞으로 이 내용을 책으로 펴볼까 생각합니다. 공모전도 있으니 꼭 ...  
659 나를 감동시키는 우리 아이들 [1] 363     2002-04-04
출근하는데 목련꽃잎이 지져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우리반 청소구역이라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동쪽 현관에서 양동이와 빗자루를 들고 나오는 아이가 하나 보였다. 먼곳에서 자세히 보니 우리반 "예찬이"였다. 아침 일찍 자기가 맡은 담당구역 청소를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