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두 가지의 약속을 뒤로 미루고
오랫만에 오페라를 보러갔습니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1년에 40-50여회의 음악회를 갔고
오페라가 있으면 특히 빠지지 않고 찾아갔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거의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 때는 오페라의 아리아가 너무 좋아서
아리아집을 사서 혼자 발음도 정확하지 않으면서
밤을 새우며 곡의 가사를 외우고, 음반도 모으고, 값비싼 비디오 테이프도 사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한 동안 이 일에 매달리다보니
예술의 전당이 왜 이렇게 멀어보이고
몇 만원 하는 값이 왜 이렇게 비싸보이던지...

국립 오페라단에서 하는 모짜르트의 코믹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는 그 동안 하이라이트로만 즐기다가
몇 년 전 학생에게 빌려준 후 받지를 못해 오랫동안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곡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길에 혼자 기대에 차서
빨리 가서 듣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 졸이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랫만에 가보는(작년까지는 매달 한 번 씩 갔었죠) 예술의 전당은
어둠 속에서 금메달을 기다리는 선수의 기분이었습니다.
연주회에 찾아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문틈을 통해 들려오는
튜닝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들려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아 행복해라!)
드디어 연주회가 시작되고 저는 앞쪽 좌측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차분한 듯 하면서 경쾌한 서주의 멜로디가 역시 모짜르트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서주에 어울리는 발레하는 이들의 긴장된 눈빛,
그리고 막이 오르며 화려한 무대 세트가 저를 압도합니다.
지방 공연에 익숙해 있던 저에게 서울의 화려한 무대는
서울에 혼자 올라온 어려움과 외로움을 모두 씻어 내는 듯 합니다.

피오르딜리지 : 김은주
도라벨라 : 전효신
데스피니 : 눈치아 산토디로코
돈 알폰소 : 유지호
페란도 : 이영화
굴리엘모 : 전기홍
지휘 : 최승한
연출 : 백의현

전기홍씨는 전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고
이영화씨나 유지호, 전효신, 백의현 씨는 그 동안 이름만 듣고 있었는데
나머지 분들은 잘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그 동안 음악 생활을 게을리 했더니 이제 정말 까막눈이 되어가나 봅니다. 다시 음악 잡지를 신청해야 할까봅니다.

전체적으로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분적으로 감동! 그리고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로요...
처음 본 김은주 씨는 여러 콩쿨에서 우승한 경력이 말해주듯 정말 고급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표현력이 군데 군데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늘 김은주씨를 알게 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데스피나의 눈치아 산토디로코..
이 분은 이태리에서의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듯 깨끗한 음색과 자기 역할에 정말로 충실하게 감당해내는 점들이 가장 알맞은 캐스팅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성악가들과 비교해서 연기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노래를 하다가 오페라로 빠지는 데 비해서
이태리의 경우 오페라가 보편화 되어 있어 연기와 성악을 함께 준비하는 분위기의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격차가 줄어든 느낌)
전효신 씨, 유지호씨, 이영화씨
미성이나 전기홍씨의 장점들을 모두 뽐낼 수 있는 오페라는 아닌 것 같아 아쉽웠지만 2중창이나 4중창, 6중창 등에서 서로간의 호흡이 잘 맞아드는 것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름이 나면 이렇게 자기를 죽이고 서로의 소리를 맞추어가는 경우가 드물었거든요.
이 오페라에서 정말 하이라이트는 이런 중창이 정말 가장 압권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페라를 보고 돌아오면서 전에 오페라 합창으로 출연하던 기억들이 났습니다. 3일 동안의 연주를 위해서 6개월을 준비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오늘 본 오페라가 더욱 더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참 끝나고 오는 길에 행운권에 당첨 되어서 향수까지 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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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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